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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21.05.09 15:10

[공소리 칼럼] 연애 세포가 없다? 나 스스로 건사하기 바쁘다

▲ 픽사베이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중간중간 소위 썸씽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내 마음을 전혀 흔들지 못하는 지나가는 약한 바람에 불과했다.

그러다 최근 또 한차례 썸씽이 있었다. 아니다. 썸씽이라고 하기에는 뭐가 없었으니, 그냥 데이트라고 하자. 오랜만에 남자사람과 데이트를 했다. 평범한 연애 초기의 그림처럼, 파스타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브런치를 먹고,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그런 데이트.

상대는 멀쩡한 남자였고, 나이는 한 살 차이의 공무원이었다. 가까운 동네는 아니지만 서로 같은 SRT를 탈 수 있는 역과 가까이 살았다. SRT로 15분만 달리면 볼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학부 전공이 국어국문학과라고 했다. 나는 현재 문예창작과를 전공한다. 그런 비슷하고 가까운 것들이 있기에 만나기 부담스럽지 않은 상대였다.

긴 데이트를 적게 했다. 같이 브런치를 먹고, 저녁에는 내가 차로 그 남자 동네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하루종일 붙어 있었지만, 마땅히 할 건 없었다. 그 남자사람은 내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을 계속 물었다. 나와 나중에 이런저런 것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최근에 운동도 시작한 데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하고 놀고 하다 보니 나는 몸살이 심하게 왔다. 긴 시간 연락을 못했다. 상대방이 오해하기 딱 좋았다. 오해했다. 결과적으로 그 오해가 원인이 돼서 더 이상의 데이트는 물 건너갔다.

썸씽이 생기기도 전에 남자와의 이별에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해봐서 누군가와 하루종일 붙어 있는 거 자체가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남자가 여러 차례 내가 마음에 든다고 직설할 때마다 마땅히 좋은 대답을 못 했다. 그 말에 마음이 설레거나 혹은 좋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연애 세포가 사라졌나? 오랜 시간 싱글로 지내다 보면 연애에 적합한 감정들이 풀이 죽어버리는 거 아닌가?

어쩌다 연애의 구실도 못 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애를 너무 안 해서, 혹은 나이가 들어서 연애세포가 사라진 건 아니다. 현실에서 나 자신도 겨우 건사하면서 지내는 게 그 까닭일 것이다.

나와 같은 청년들은 많다. 특히 취준생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귀찮고, 피로하고, 자존감도 없는데 무슨 연애를 할 수 있으랴.

어느 순간 삶은 돈 버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만큼 염세적인 시간으로 일상을 보낸다는 거다. 그리고 점점 체력은 떨어진다. 열정으로 이 한 몸 다 바쳐 놀 수가 없다. 그리고 흥미를 끌만 한 것이 없다. 대부분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체력도, 흥미도, 감성도 없는데 연애가 가능할 수 있을까? 육체적인 관계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온 신경을 곤두서서 관심과 애정을 몸과 마음으로 쏟을 연애는 그렇지 않다.

관심사도 20대 초반처럼 이성이나 남들에게 보이는 외모 같은 게 아니다. 화장을 안 한 지 오래됐고(단순히 번거롭고, 화장을 안 하니 피부가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혼자 일할 땐 편안한 생활한복을 입고, 모임을 하거나 클럽을 가거나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돈이 주 관심사다. 주식 공부를 하고 싶고, 언제까지 얼마의 돈을 모으고, 언제쯤 전세금을 마련해서 사는 것 등이 더 중요하다. 잠정적으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안 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혼자서 더 잘 사는지 그게 삶의 관건이 되었다.

그래도 연애는 할 수 있지 않냐고? 그렇다.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난다면, 내 눈에 콩깍지 단단히 씌어서 매일 연락하고 쫓아다닐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연애할 거다.

그러나 그런 드라마틱한 감정이 생길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삶은 돌고 돌아서 또 같은 것을 경험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할 뿐이다. 그럴만한 체력과 열정이 돋을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 혼자인 게 괜찮다. 그만큼 나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나를 더욱 채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라, 스스로 독립적인 행동으로 삶을 지탱할 힘을 키우는 때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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