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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소리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9.05.20 13:45

[공소리 칼럼] 아이에서 소녀가 되는 건 방치에 가깝다

[스타데일리뉴스=공소리 칼럼니스트] 성조숙증을 겪는 아이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10명 중 9명은 여아라고 나왔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진료데이터를 활용해 5년간 성조숙증 환자를 분석한 결과다.

성조숙증은 2차 성징이 또래보다 일찍 시작되는 경우다. 대개 여아는 8세 이전, 남아는 9세 이전에 2차 성징이 시작되면 성조숙증으로 진단한다.

▲ 픽사베이 제공.

아이에서 소녀가 되는 과정은 방치에 가깝다

나는 9살 때 2차 성징을 시작했다. 음모가 나고 가슴에 몽우리가 잡혀서 매우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성조숙증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기라 그저 빨리 성숙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어떤 생각도 못했다. 내 신체는 변화하는데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들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야한 꿈을 꾸면서 ‘여성 몽정’을 겪었는데 아무에게도 그 날의 일을 설명할 수 없었다. 부끄럽고 나만 잘못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이차성징의 징후였음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열 살이 되자, 학급에서 가슴 몽우리가 생겨나는 친구들이 조금씩 등장했다. 그 중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는 아동용 브라자를 가족에게 선물 받고서는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나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우리 엄마는 내가 가슴이 나왔지만, 속옷을 사주기는커녕 관심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였지만, 엉덩이가 커지고 가슴이 생기고 음모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쯤 섹시하다는 개념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성숙을 알아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음모가 자랐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어린애가 벌써부터 음모가 난다’며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의 이차성징의 시작은 부정적인 것들이 함께했다.

첫 월경이 터진 날은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다. 내 월경에 관심을 갖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저 엄마와 언니가 사용하던 생리대를 찾아 착용하고서 혼자서 여성이 됨을 축하했다.

아동용 브라자를 선물 받았던 열 살의 친구는 아마도 첫 월경이 시작됐을 때, 모든 가족의 축하와 기쁨 속에서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처럼 무관심한 가족들의 태도로 이차성징을 겪어가는 아이들은 많을 것이다.

서구화된 식습관,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 비만 등으로 성조숙증도 늘어가고 있고, 과거보다 이차성징이 앞당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빠른 사춘기의 시작을 받아줄 준비가 된 가정과 사회 인식은 아직 멀지 않았을까.

특히 여아들은 일찍 사춘기를 시작하는데 그에 따른 가정과 학교의 성교육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내가 왜 이렇게 일찍 이차성징을 시작했는지, 여성 몽정을 왜 겪은 건지 설명해주는 성교육은 하지 않았다. 물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인혁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조숙증을 방치하면 신체적, 정신적 불안의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빠른 사춘기를 어린아이 혼자 감당하게 하는 현실은 한 사람의 성적 인식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빠른 이차성징을 겪을 수 있다. 요즘은 보통 초등학생부터 사춘기를 시작하기에 ‘아직 우리 아이에게는 이른 이야기’라고 속단하면 안 된다. 이차성징이 오기 전부터 부모는 예비해야 할 자세가 있고, 학교는 그에 따른 성교육을 전담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청, 학교 등과 관련한 성교육 사례에 대한 내용은 뉴스로도 뜨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성교육을 받으며, 어떻게 성숙을 해나가고 있을까?

이름 모르는 소녀도 나처럼 혼자서 모든 걸 겪고 있지 않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여성 몽정 후 오랜 시간 동안 궁금증을 풀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누군가 또 겪지 않길 바란다. 적어도 가정과 학교에서는 현재 진행하는 성교육을 포함해 스스로 겪는 이차성징에 대처해야 하는 물리적, 정신적 방법에 대해 현실적인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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