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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7.09.17 10:14

[권상집 칼럼] 우리는 왜 히딩크 감독을 원하는가

구태로부터 벗어난 열정과 투혼의 땀방울을 우리는 보고 싶다

▲ 거스 히딩크 감독 (출처: 대한축구협회)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히딩크 감독의 국가대표팀 복귀에 대한 이슈는 인터넷 주요 포털을 마비시킬 정도로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적폐 연예인 신정환의 복귀가 소리소문 없이 묻힐 정도의 파급효과였다. 심지어 북핵 미사일 등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우울한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직 수락 여부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대한축구협회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더해지면서 히딩크 감독의 복귀 이슈는 방송연예 매체, 스포츠 언론을 넘어 주요 언론에서 찬반 논란을 강조할 정도로 국민적 논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왜 대중은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복귀를 원하는지 우리는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히딩크 감독 복귀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반응은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지난 9월 6일 YTN 보도를 통해 나타난 ‘히딩크 감독 복귀설’에 대해 “불쾌하고 어처구니 없는 얘기”라며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감독직 복귀 의사를 들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을 수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보도를 통해 드러났듯이 히딩크 감독은 측근을 통해 SNS로 대한민국 대표팀 복귀 의사를 대한축구협회에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곧바로 일부 사실을 인정한 대한축구협회의 태도에 대해 대중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신태용 감독 체제 고수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대한축구협회의 말 바꾸기 행정에 대해 대중이 앞으로 신뢰를 보이긴 어려울 정도이다.

스포츠 언론들 역시 ‘신태용호 지키기’에 나섰다. 그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한다. 준비기간이 짧았던 신태용 감독을 흔들지 말라는 언론 보도는 당연하나 신태용 감독 체제를 지키기 위해 히딩크 감독을 비아냥이 섞인 어조로 깎아 내리는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2012년 이후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이 한물가서 영입 되도 별볼일이라고 기사화한 모 언론의 보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한 네델란드를 유럽선수권 본선에도 진출시키지 못한 감독이라는 비난,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후에 한국에 오겠다는 생각 자체가 졸렬하다는 모 언론사 축구팀장의 칼럼 자체가 졸렬하다고 느낀 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예전부터 대한민국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라고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중국으로부터 국가대표팀을 맡는 조건으로 연봉 200억이라는 사상 최고 대우를 약속 받고도 영입 제의를 거절한 인물이다. 참고로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제시 또는 제공한 연봉은 15억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히딩크 감독이 과연 ‘돈만 밝히는 감독’인지는 모르겠다. 김호곤 부회장에게 15억은 큰 돈이지만 히딩크 감독 같은 월드 클래스급 명장에게 15억은 큰 돈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돈을 밝혔다면 이미 중국을 포함해 수백억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한 국가나 프로팀을 맡았을 것이다.

아울러, 홍명보 감독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에도 히딩크 감독은 “충분히 성장해서 더욱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야 하니 월드컵 성과를 떠나 2015년 호주 아시안컵까지 임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홍명보 감독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성과 지상주의의 대명사인 대한축구협회의 일방적인 감독 자르기식 땜질 처방을 우려했던 것이다. 특히,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월드컵 감독을 맡았을 때에도 선수 선발 및 운영 방식에서 사사건건 대한축구협회와 갈등을 벌인 적이 있다. 월드컵이 끝난 후 히딩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에게 장기적인 대한민국 축구 발전의 성장 방향을 제시했지만 정작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대한축구협회였다.

대중이 히딩크 감독 체제를 요구하는 건, 그에게 월드컵 4강과 같은 신화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히딩크 감독을 한 물 갔다고 표현한 일부 기자나 축구협회 관계자는 여전히 대중의 마음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대중은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투혼과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는 리더십을 보길 원한다. 성과를 떠나 당당하게 유럽 및 남미와 대등하게 겨루기 위한 선수들의 투혼 그리고 쉽게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력, 눈앞의 성과와 선수의 지명도에 연연하지 않고 실력과 연습벌레를 중시하는 공정한 선수 선발 등 모든 면에서 히딩크 감독은 우리에게 ‘리더십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훌륭한 리더와 함께 할 때 팔로워(축구선수)들이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양적 성장을 중시하지 않고 질적 성장을 중시한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월드컵 4강 성과에 도취되어 있을 때 유소년 축구 육성, 재능 있는 선수들의 해외 진출 장려, 축구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히딩크 감독은 당부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이를 외면하고 중요한 스포츠 이벤트가 벌어질 때는 항상 모든 책임을 감독에게 맡겼다. 이렇게 해서 희생된 감독은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감독 등 한둘이 아니다. 신태용 감독이 선수 또는 지도자로 월드컵 경험을 갖지 못했다는 불안 때문에 대중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 전략 및 전술, 리더십 등을 충분히 학습한 후 성장하는 것이 신태용 감독의 커리어에도 바람직하다고 대중은 느끼고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이후, 15년간 11번의 감독을 갈아치우며 대한축구협회는 장기적인 로드맵보다 눈 앞의 성과만을 중시해 왔다. 1년 간격으로 감독을 갈아 치우는 이 독이 든 성배에 히딩크 감독이 다시 모든 걸 기여하고 싶다는 마지막 소망을 피력했다. 현재 선수들의 자신감은 땅에 떨어졌고 국민들은 축구 대표팀이 “아시아 전형으로 월드컵에 강제 진출 당했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 무거운 책임을 신태용 감독에게만 강조하는 대한축구협회 솔직히 민망하고 부끄럽다. 대중이 왜 히딩크 감독을 부르는지 그리고 ‘히딩크 현상’이 왜 지금 다시 나타나는지 깊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2018년 월드컵에서 우리 국민은 대표팀의 가시적인 성과보다 진정성 어린 투혼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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