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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10.19 08:51

[김윤석의 드라마톡] 구르미 그린 달빛 마지막회 "성급하고 말끔한 결말, 아무것도 남기지 않다"

사랑만 하고 사랑만 하고 사랑만 하며 끝나다

▲ 구르미 그린 달빛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구르미 그린 달빛. 그래도 한 가지 남은 것은 있다. 어째서 김헌(천호진 분)은 그토록 독하고 악하게 권력을 탐해야만 했던 것일까? 신하로써 왕(김승수 분)을 고립시키고, 왕비를 죽였으며, 세자(박보검 분)마저 무릎꿇리려 하고 있었다. 과연 친손자인 김윤성(진영 분)을 보면서 떠올리던 기억 그대로 관상가의 말을 믿고서 김윤성을 왕으로 만들려 그런 모진 일들을 해왔던 것이었을까. 

말 그대로 반전이었다. 당시 세자와 김윤성은 복건을 서로 바꿔 쓰고 있었기에 관상가가 보았던 관상은 원래 두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복건을 바꿔 쓴 상대의 것이었다. 군주의 상이라던 김윤성의 관상은 원래 세자의 것이었고, 단명할 것이라던 세자의 관상 역시 원래 김윤성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김헌도 두 사람이 복건을 바꿔쓰는 모습을 보며 알게 되었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않고 운명이 정한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면 자신이 아끼는 손자 김윤성이 어린 나이에 일찍 죽고야 말 것이다. 세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운명을 바꿔야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세자와 운명을 바꾸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온몸을 오물에 담궈서라도 그렇게 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쉽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는 그저 허탈하고 허무하기만 한 마지막회였을 것이다. 왕은 바보였다. 단지 죽은 중전의 편지를 찾은 것만으로 조정의 실력자 김헌을 바로 죄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일단 김헌이 죄인이 되고 나자 조정에는 그를 위해 편드는 사람마저 하나 없었다. 김헌을 처벌하는데 동원된 관리와 병사들은 모두 왕의 충실한 수족들이었다. 왕의 의지대로 하는데 전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저항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10년 전 자신의 아내이기도 한 중전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을 때 그저 김헌의 기세에 눌려 떨고만 있었던 것일까? 어머니가 죽은 의혹에 대해 말하는 아들을 침묵케 하며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더구나 결정적인 증거라던 중전의 편지마저 직접적인 사실보다는 간접적인 정황만을 전할 뿐이었다. 단지 그것이면 충분했던 것이었다.

하긴 어쩔 수 없이 마지막 한 회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끝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일관되기도 하다. 그저 마냥 아무 생각없이 함께 있으면 좋았던 세자와 홍라온(김유정 분)처럼 그렇게 그저 끝도 모두가 좋기만 하면 되었다. 무난하다기에는 그러기까지 과정이 상당히 과격하기도 하다. 전혀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김헌과 그 일파의 숙청도 단 두 회만에 모두 끝냈고, 더구나 왕마저 두렵게 만들었던 김헌과 그의 딸 중전을 제거하는데는 고작 절반의 분량도 들어가지 않았다. 

역적의 딸이라는 홍라온의 죄목도 김헌을 제거하는데 기여하면서 사면의 명분이 주어졌고, 무엇보다 당장 세자빈의 위치에 있는 조하연(채수빈 분)까지 스스로 물러나며 두 사람 사이에 장애가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조선의 세자로서 탐학과 부정을 일삼던 김헌 일파가 사라지고, 남자로서 홍라온과의 사이에 걸림돌이 사라졌다. 말끔하다. 지금도 왕이 된 세자는 아무렇지 않게 미행을 나와 저자에서 홍라온과 만나 사랑을 나누면 된다. 내가 뭘 보고 있었는가 멍해진다.

새삼 몇 년 전 방영된 역시 비슷한 조선이라는 실재한 역사를 배경으로 허구의 인물과 사실들을 구성한 가상역사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도 '해를 품은 달'에서는 시대가 조선이고 공간 역시 조선의 왕궁이라 여길만한 구체적인 사실들이 있었다. 허구의 역사를 재구성하면서 상당히 탄탄한 고증으로 치밀하게 기초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드라마를 보다 말고 조선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 가운데 실제 이런 일들도 있지 않았을까 허무맹랑한 상상도 해보곤 했었다. 실제 있었던 일처럼 정교하고 생동감있다.
 
그러나 정작 실재한 역사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아예 대놓고 이것은 허구일 뿐이라며 그나마 사실과의 고리를 모두 잘라버리고 있었다. 그럭저럭 사실처럼 개연성을 가질만한 부분들을 작가의 바람과 의도대로 모두 정리해 버린다. 어찌되었든간 세자를 방해한 나쁜 놈들이니 몰락해야 하고, 세자와 홍라온의 관계에 방해가 되니 조하연도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 얼마나 구체적이고 타당한 절차와 과정을 밟았는가는 무시된다. 해피엔딩이면 좋다. 두 사람이 다시 사랑할 수 있으면 좋다. 아무 감동도 없다.

그럴 것이면 차라리 김윤성도 김병연(곽동연 분)처럼 알아서 할아버지 김헌과 다른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나 줄 것이지 역시나 이번에도 홍라온의 무모함과 경솔함으로 인해 끝내 목숨까지 잃고야 만다. 역적의 딸이라며 관군이 쫓고 있고, 더구나 세자의 약점이기에 더욱 김헌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궁궐에서 내시로 있으면서 그렇지않아도 얼굴이 익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바로 얼마전에는 김헌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친국하는 왕의 앞에까지 끌려갔었다. 

아무리 철없고 생각없이 사는 캐릭터라도 한 번 부주의하게 돌아다니다 정체가 들통나고 잡히기까지 했다면 최소한 다시 궁궐로 들어가서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은 보였어야 하는 것이다. 기껏 정체를 감추겠다고 복면까지 쓰고 들어가서 친한 옹주의 모습이 보인다고 대뜸 복면부터 벗어버리고 나중에는 아예 맨얼굴로 옹주와 함께 궁궐 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그냥 나 잡아달라 외치고 있는 듯했다. 열구 김윤성과의 삼각관계까지 이렇게 한 번에 잘라내고 만다. 김윤성이 살아있다면 김헌을 제거할 때 그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세자로서도 무척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홍라온은 세자를 위한 암살자와 같은 것이다.

아무런 애닲음 같은 것이 없었다. 아쉽고 안타깝고 그래서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그런 사연이 없었다. 역적의 딸이라 잠시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거의 바로 다시 만나고 있었다. 다시 만나지 않겠다 하면서 바로 다음 회차에 거의 만나고 있었다. 이래서 안 이루어지고, 저래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간절함의 끝에 무언가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난다면 뿌듯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말끔하다. 작가가 시청자보다 앞서서 시청자가 미처 느끼기도 전에 모두 끝내 버리고 만다. 시청자가 느끼는 것은 그 찌꺼기다. 말끔하게 씻어난 나머지를 그저 시원하다 깨끗하다 여긴다. 그저 공허하고 허무한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효명세자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 모르겠다. 괜한 기대가 오해를 부르고, 쓸데없는 오해가 드라마를 제대로 감상하는데 방해가 된다. 그렇더라도 그다지 이야기가 치밀하지도 탄탄하지도 못한 것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너무 많은 시간을 사랑으로 허비했다. 로맨스 드라마이기는 하다. 조선은 장식이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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